김형근의 그림들에 대한 몇 가지 생각
- hyeonggeunkimateli
- Feb 21, 2023
- 2 min read
Updated: Feb 27, 2023
1. 선(禪)과 그림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라는 말이 있다. 이 문(門)에 와서는 지식과 견해를 갖지 마라. 이 문에 들어오려면 지식과 견해가 없어야 한다. 그런 의미이다. 그러나 지식과 견해를 버리기는 어렵고, 그래서 선문(禪門)은 높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만 산과 물에 대한 지식과 견해 때문에 우리는 산과 물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을 놓아 버려야 한다고 말들을 하지만 쉽지 않다.
생각으로부터의 자유,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지난하다. 그래서 선문(禪門)은 좁다.
그러나 이 그림들 앞에서는 지식과 견해를 가질 필요가 없고, 그래서 누구나 그림을 볼 수 있다. 이 그림들 앞에서는 생각을 버리려고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생각할 뭔가가 없고, 있었던 생각들조차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그림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2. 그림과 해석
이 그림들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 그림들은 과거의 그 어떤 그림과도 다르다. 단순한 원형과 다양한 색깔로 그려진 것이라는 사실 외에 이 그림들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적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정서적으로는 강력하고 충만한 에너지가 넘친다.
색이 사고를 매개하지 않고 눈에 들어올 때 그것은 순수한 경험이 된다.
만약 경험만 남기고 경험에 대한 해석을 놓아 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3. 치유와 그림
어떤 그림들은 지나가고, 어떤 그림들은 우리를 멈추게 한다. 어떤 그림 앞에 서면 우리 내면의 깊은 상처나 트라우마가 드러나기도 하고, 갈망이 충족되거나 근심 걱정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림의 위안이 삶의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화와 치유를 원한다. 사람들이 그림 감상이나 칼라 테라피에 참여하는 이유는, 지나치면 문제가 되지만, 사람들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이유는, 게임이나 영화나 드라마에 푹 빠지는 이유는, 봄날의 벚꽃과 폭죽과 불꽃놀이에 여름날의 바닷가에 가을날의 단풍놀이에 열광하고 심취하는 이유는, 정화되고 치유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세상으로 다시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4. 명상과 그림
치유는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치유가 일어나려면 그럴 만한 준비와 조건과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림을 보고, 그림은 우리를 본다. 우리가 그림을 보면 그림은 우리의 내면을 비춰주고 우리는 뭔가를 느끼고 알아차린다. 그래서 그림이 우리 안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긴장을 풀고, 평가나 해석 없이 그저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대 없이 욕망 없이 뭔가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일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림 앞에서 우리는 뭔가를 하지 않는다.
뭔가는 저절로 일어난다. 혹은 전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뭔가 일어날 때 무엇을 하는 자는 없다.
뭔가가 일어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5. 영성과 그림
우리 각자에게는 색깔에 대한 선호와 취향이 있다. 왜 붉은색을 좋아하고, 왜 푸른색을 좋아하는지, 혹은 왜 싫어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색에 대한 각자의 선호는 분명하다. 자신이 선택한 색은 자기 자신을 말해준다. 자신이 선택한 색과 그림은 자신이 누구이고,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색채와 그림에 대한 호오의 반응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화 과정에서 혹은 사회문화적인 영향으로 혹은 개인적 삶의 특정한 경험에 의해 조건화 된 지나친 애착과 혐오의 반응은 색에 대한 자연스러운 경험을 방해한다.
색채와 그림에 대한 선호와 호오의 반응은 삶에 대한 선호와 호오의 반영이다. 따라서 색에 대한 이해는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한 이해이다. 자기 자신의 조건화와 내적 갈등을 이해하고 해체하고 풀어내는 것은 자기 성장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고, 이 작업이 자기 이해와 성장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이것은 영적인 길이다.
6. 그림 공부와 평화
우리의 삶은 조건 지어져 있고, 조건 지어진 모든 것은 변화하고 고통스럽지만, 고통과 질병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성장한다. 지속적인 삶에 대한 통찰을 통해 고통이 잘 이해되고 고통의 원인이 제거되면 우린 행복해지고 삶은 평화로워진다.
애착과 혐오 없이 모든 색깔들을, 모든 그림들을, 모든 상황과 조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것은 마치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경험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나날의 수행을 통해, 거듭된 삶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지고하고 성스러운 경지이다.
빛고을에서 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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