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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Empathy-

  • hyeonggeunkimateli
  • Feb 21, 2023
  • 2 min read

Updated: Feb 27, 2023

이게 뭐지? 이게 무슨 그림이지?

그게 뭘까? 분명 뭔가 보이는데?

그림에 특히, 추상화에 문외한인 나의 첫인상이다.


원(圓)은 안으로 하나의 점(點)으로 수렴되고, 밖으로 우주 끝까지 발산된다. 당신이 누구이든, 당신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의 인생이 어떠했던 그 모든 것을 그의 그림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의 원을 안으로 따라가다 보면 막바지 어디쯤 당신이 누구냐에 따라 도 (道)가 있고, 부처가 있고, 유일신 하나님, 무극과 태극, 참 나, 현존을 조우 하고, 밖으로 펼치면 광활한 우주와 전생의 카르마, 돌아가신 부모님, 숨겨 둔 아픈 기억, 인간적 소망과 욕심을 소환하게 될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당신이 경험 할 수 있는 의식 가능한 삼라만상이 그의 그림에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고 완벽하게 당신에게 투영하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는 내가 아는 가장 세속적 욕심이 없는 사람이며 그 어떤 위대한 사상가나 철학자보다 많은 진리와 자아탐구를 한 사람이며 평생 처절한 공부의 결과가 한 폭 그림의 탄생이다.


그는 친절함과는 거리가 한참 먼 화가다.


작품의 제목, 설명, 적절한 감상법, 관람자에 대한 위로나 치유 등 무엇에도 관심 없어 보이지만 그 속내는 집안에 파랑새를 두고 멀리 찾아 나서는 우(愚)를 범하게 하고 싶지 않은 배려이다. “더할 나위 없음” 작품이 이미 더 할 나위 없는데, 티끌만큼의 보탬과 친절도 모두 사족(蛇足)일 수 밖에 없고 오히려 관람객의 직관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기존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 화가의 감정과 정서, 의도가 얼마만큼 그림에 표현되고, 감정 이입되어 그걸 관람객이 감상하며 감동하느냐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김형근의 그림에서는 그런 부분을 전혀 찾을 수 없고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림을 그린 화가의 감정, 정서, 의도의 일부가 아니라 화가 자체가 온놈(‘통째’의 전라도 방언)으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질러 놓고 정작 그는 어항 속에 금붕어가 헤엄치듯 너무도 평온해 보인다. 인간으로 세상에 와서 주어진 임무를 치열하게 수행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음미하기 위해 손에 붓 대신 커피 드리퍼를 쥔 안도감, 개학을 여유있게 앞두고 방학숙제를 마친 어린아이의 의기양양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이쯤에서, 내가 그의 그림에서 보는 것이 무엇인지 실토하자면

그것은 거대한 ‘침묵’이다.


경영학 박사 이 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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